신행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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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 가지 징표 : 사문출유 (四門出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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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삼봉사 작성일15-02-10 11:12 조회2,59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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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궁정 생활이 안락 했지만 마음을 충족 시키지는 못했고, 그래서 붓다는 더 심오하고 더 정신적인 만족을 주는 삶의 길을 동경했다.

     

    후기의 전설들은 붓다가 마차를 타고 궁정 밖을 네 차례 방문햇다는 이야기 속에서, 이러한 불만을 드러내고 있다. 붓다를 과잉보호했던, 아버지 - 마야 부인이 꿈속에서 예측 된 종교적인 선사로서, 자신의 운명을 수행하기 위해 아들이 집을 떠날까봐 계속 두려워 했다.-는 건강하고 웃는 사람들로 거리가 채워지도록 조치 했으며, 그래서 싯달타는 불쾌한 광경을 보는 괴로움을 겪지 않았다.

     

    붓다가 지나가는 길에는 노약자들을 모두 몰아내어 눈에 띄지 않도록 햇는데, 그러다가 우연히- 후대의 자료에 의하면 신들의 개입으로-붓다는 한 노인을 만나게 된다.

    붓다는 노인을 발견하고서 청천벽력과 같은 충격을 받았으며, 마부에게 즉시 환궁을 명해, 궁으로 돌아가 늙는다는 것의 의미를 사색했다.

     

    두 번째 출타에서 붓다는 병든 사람을 만났고, 세 번째에는 화장터로 실려 나가는 시체를 보았다.

    이런 경험들을 통해 붓다는 인간 존재의 덧없음을 느끼고, 왕궁의 벽들이 고통과 죽음을 막아주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네 번째 출타에서 붓다는 탁발수도승 (사문, 출가한 수행자)을 만났고, 인간 조건의 문제에 대한 영적인 해결책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을 얻게 되었다.

     

    바로 그날 밤, 붓다는 왕궁을 떠나기로 결정했으며, 잠자고 잇는 아내와 아들을 마지막으로 한번 보고 나서 집 없는 탁발 수도승이 되기 위해 떠났다.

     

    이 소박하면서도 의표를 찌르는 이야기는 문자대로의 의미에서 진실일 것 같지는 않다.

    이야기에서 묘사한 대로 붓다가 그렇게 순진했다든지, 궁정 생활에 대한 환멸이 그토록 갑자기 생겨 났으리라고 믿기는 어렵다. 오히려 이 이야기를 궁정 생활의 안락함과 자기 탐닉을 드러내는 우화로 이해하고, 네가지 징표를 본 것은 인간의 삶의 본질에 대한 깨달음의 단초로 읽는 것이 유용할 것이다.

     

    오늘날 붓다가 살아잇다면, 붓다는 사방에서 그 네가지 정표를 보앗을 것이다. 모든 노인들. 병원. 장례식은 인생이 얼마나 짧고 덧없는 것인가를 말해 줄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교회와 목자들을 통해 확인 할 수 있다.

     

    이 우화는, 비록 징표가 사방에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젊은 붓다가 그랬듯이-유쾌하지 못한 현실을 떼어 놓기 위해 정신적 장벽(왕궁의 성벽들)을 세워야 함을 시사하고 있는 듯하다.

    붓다가 마차를 타고 밖으로 나갔을 때 그랬듯이 환대할 수 없는 삶의 사실들이, 즉 질병이나 약탈 같은 무시할 수 없는 방식으로 우를 덮칠 때가 잇는데, 그 것을 무시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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