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행이야기

    신행이야기

    최초의 설법과 교화 행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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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삼봉사 작성일15-02-23 10:44 조회2,42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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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라나시 근교에 잇는 녹야원 (鹿野苑)에 도착한 붓다는, 처음에는 약간 주저햇으나, 붓다가 뛰어난 지견(智見)을 얻었음을 금방 깨달은 동료들에게 환영을 받았다.

     

    붓다는 자신을 여래(tathagata, 진리에 도달한 사람-정말로 잇는 그대로의 것을 얻은 이)라 선언하고, 불교 역사상 기념비적 사건인 최초의 설법을 했다.

     

    그 최초의 설법을 '초전법륜 (初轉法輪)이라 불렀다.

     

    이것은 사제 설법으로 알려진 불교의 기본적인 가르침을 담고 잇다. 이 사제설법은 제4장에서 더욱 자세히 논할 것이다.

    바퀴(輪)는 불교에서 중요한 상징이다. 이것은 법(法)을 나타내는 데 자주 사용된다.

    최초의 설법은 법의 바퀴에 최초의 기동력을 준 사건이며, 바퀴는 불교가 아시아에 퍼져 나갈 때 끊임없이 앞으로 굴러 갈 것임을 의미한다.

     

    최초의 설법을 들은 청중 중 한 사람이 즉시 얼핏 진리를 포착하게 되었고, 그는 진리의 본궤도에 발을 디딘 사람 또는 정신적 이해의 예비 단계에 오른 사람이 되었다.

     

    붓다가 설법을 더욱 소상히 설명하자, 나머지 네 사람의 탁발수도승들도 그런 경지에 오르게 되었다. 다섯 사람 모두 붓다의 제자가 되었고, 간단한 의례를 통해 비구승이 되었다.

     

    붓다의 두 번째 설법을 들은 뒤, 다섯 명의 제자들은 모두 완전한 깨달음을 얻었다.

     

    다섯 제자를 비롯해, 그들과 같은 깨달음을 얻은 다른 사람들은 붓다가 아니라 아라한(阿羅漢, 성자)으로 알려졋다.

     

    왜냐하면, 붓다라는 말은, 타인에게 가르침을 받지 않고 스스로 깨달음의 길을 찾은 자에게 붙여지는 명칭이기 때문이다.

    붓다의 가르침은 금새 퍼져나갓고, 곧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깨달음을 얻었다.

     

    초기의 경전에 의하면 60명의 아라한이 있었고, 붓다는 그들을 포교사로 삼아 자비의 가르침을 세상에 전파하도록 했다.

    비구들을 위한 정사 (精舍)가 세워진 5년 후에, 붓다는 비구니 승려들을 위해 똑같은 정사를 세우자는 간곡한 요청을 받았다.

    처음에는 주저 햇으나-사찰제도 자체도 새롭게 발전하는 것이엇고, 비구니 승려들을 위한 사찰은 거의 선례가 없었다-결국 붓다는 동의햇다.

    비구니 승려들의 사찰은 비구승들의 사찰만큼 번성하지는 못했고, 오늘날 일반적으로 승가(불교 교단)는 비구승들의 교단을 의미한다.

     

    붓다 삶의 후반부와 관련해 이용할 만한 전기적 세부사항은 거의 없다.

     

    그러나 붓다가 북동인도의 도시들과 마을들을 걸어서 여행하며, 서로 다른 종교적.사회적.경제적 배경을 지닌 수없이 많은 청중들에게 설법을 하며 시간을 보낸 것은 분명하다.

    붓다가 순례한 지역은 길이가 1백 50마일 (약 240km)에 폭이 2백50마일 (약 400km)이나 되었는데, 그 넓이는 아일랜드나 펜실베니아주보다 약간 작다.

    붓다는 설법을 하고 질분에 답하며 온갖 직업을 가진 사람들과 논쟁을 할 때, 청중을 휘어 잡았던 것으로 흔히 묘사되어 있다.

    붓다의 태도는 항상 정중하고 조용햇으며, 경전에 언급된 수 많은 개종자들의 수가 그의 설득력과 개인적 카리스마를 여실히 보여 준다.

     

    때때로 붓다가 기적을 행한 거스로 묘사 되어 있는데, 이는 붓다가 명상을 통해 발전 시킨 염력에 기인한 능력이다.

     

    대중의 인기를 점점 더 많이 얻게 되고, 추종자의 수도 점점 더 늘어나자 수도승들이 일정기간 동안, 특히 여행을 하기 어려운 우기(雨期)에 머무를 주거지가 세워졌다.

     

    왕들이나 부자 후원자들이 교단에 기증하는 경우가 흔햇던 그런 거처들은, 마침내 정사 (精舍)나 절이라는 상설기관으로 발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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